8/30/2011
8/28/2011
8/27/2011
8/26/2011
8/23/2011
8/20/2011
8/18/2011
/I/
내인생에서 내가 집중하지 않기 시작할때,
내모습이 보이지 않을때 ,
내가 마구흔들릴때
or 내안에 타인만 가득할때 삶은 산으로 간다
인생의 원동력을 열등감이나 분노로 지정하면 안될것 같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라고..
악으로 사는것도 좀 .... 그러면 나중에 악밖에 안남잖아
결론은 자신에게 귀기울이는건 어렵다는 것이다
/II/
궁극의 음악감상이라하면 음악만 들어야 한다
딴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은 진정한 음악감상이 아니다
멀티태스킹 하는것은 감상을 해치는 일이다
귀에 꽂고 가사집을 잡고 따라부르던지 눈으로 읽던지 한다
아니면 귀에 꽂고 누워서 음악을 들으면서 천장을 멀뚱히 쳐다본다
아니면 누워서 눈감고 듣는다
방에 불을끄고 누워서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듣고 있으면 궁극의 음악감상이 열린다
zero7, James Blake, unkle, portishead, massive attack 그외 다수
새로운 공간이나 세계가 보이게 된다
이때 헤드폰 좀 좋은걸로 들어야지 후진걸로 들으면 나처럼 오른쪽귀가 뵹신이 될것이다
/III/
오늘 팟케스트 꼼수다 한 50번은 넘게 들어간것 같다 15회를 듣겠다는 집념으로 폰밧데리를 순전히 아이튠에만 접속하여 2/3가 닳았다 허나 업뎃이 아직 안됐다 불안초조하다 꼼수의 호연지기다
/IV/
나이는 같은데 대학을 나보다 일찍 입학한 분들이 있었는데 내가 그분들에게 공손히 높임말을 사용했었다지 그사람들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하고 귀여운 후배라고 아껴줬었지 키도 나보다 다들 작았는데 손수 팔을 뻗어서
지금생각해보니 황당하구나
8/14/2011
8/13/2011
8/04/2011
지산락페가 나에게 주는 의미와 비전 제시
7월 29일부터 7월 31일 3일동안 경기도 이천 짱박혀있는 지산 포레스트에서
락페스티발이 열렸는데 그간 왜 안왔었나 하는 후회막급의 교훈을 주며 앞으로 나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로 나갈 적극적인 계획을 수렴하는데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내가 만난 음악카페 사람들은 목숨을 걸었다. 음악듣고 페스티벌 가는것에.
그것에 비하면 나는 소극적인 것이다. glastonbury는 물론이고 (여기는 성지 같은 곳으로 25만명이상의 세계인종들이 다 모여서 5일동안 술퍼마시고 마약하고 샤워하는 시설 딱 한개있고 비 계속 오고 진흙탕에다가 텐트들고가서 쳐야 한다)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전세계 최고 디제이들 다모인다는 지중해 이비자 섬까지도 진출해주신다. 벨기에도 가고 세르비아가서 우리가 죽지 못해 안달인 밴드들 다 보고 와주신다. 어학연수도 영국이나 아일랜드가서 페스티발 투어 계획넣어서 공부하고 온다.
여간 부러운게 아니다. 나 호주에서 공연 몇개 본거는 본것도 아니다.
지산간거도 나름 의미 있었다. 우리나라는 원래 건전해서 큰 사건도 없고 큰 해프닝도 없이 다들 술만 마시고 돗자리 깔고 그정도다. 나는 숙소에서 잤는데 한 열시반 되면 쿵쿵 음악소리 나면서 깬다. 새벽 4시까지 음악소리 들을 수 있다. 음악 줄창 나온다 그러니까 나름 좋은것이다. 음악만 있는곳이니까. 산속이라 또 좀 멋있다. 이번에 열라 비 많이 와서 생에 그많큼 비맞으며 음악듣기는 또 새로운 재미였다. 마지막날 새벽은 아쉽고 마음이 막 그랬다
비전은 해외진출이다 어차피 2012년엔 글라스톤베리 쉰다 2013년에는 내가 영국에서 텐트를 좀 쳐야겠다
락페스티발이 열렸는데 그간 왜 안왔었나 하는 후회막급의 교훈을 주며 앞으로 나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로 나갈 적극적인 계획을 수렴하는데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내가 만난 음악카페 사람들은 목숨을 걸었다. 음악듣고 페스티벌 가는것에.
그것에 비하면 나는 소극적인 것이다. glastonbury는 물론이고 (여기는 성지 같은 곳으로 25만명이상의 세계인종들이 다 모여서 5일동안 술퍼마시고 마약하고 샤워하는 시설 딱 한개있고 비 계속 오고 진흙탕에다가 텐트들고가서 쳐야 한다)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전세계 최고 디제이들 다모인다는 지중해 이비자 섬까지도 진출해주신다. 벨기에도 가고 세르비아가서 우리가 죽지 못해 안달인 밴드들 다 보고 와주신다. 어학연수도 영국이나 아일랜드가서 페스티발 투어 계획넣어서 공부하고 온다.
여간 부러운게 아니다. 나 호주에서 공연 몇개 본거는 본것도 아니다.
지산간거도 나름 의미 있었다. 우리나라는 원래 건전해서 큰 사건도 없고 큰 해프닝도 없이 다들 술만 마시고 돗자리 깔고 그정도다. 나는 숙소에서 잤는데 한 열시반 되면 쿵쿵 음악소리 나면서 깬다. 새벽 4시까지 음악소리 들을 수 있다. 음악 줄창 나온다 그러니까 나름 좋은것이다. 음악만 있는곳이니까. 산속이라 또 좀 멋있다. 이번에 열라 비 많이 와서 생에 그많큼 비맞으며 음악듣기는 또 새로운 재미였다. 마지막날 새벽은 아쉽고 마음이 막 그랬다
비전은 해외진출이다 어차피 2012년엔 글라스톤베리 쉰다 2013년에는 내가 영국에서 텐트를 좀 쳐야겠다
new generation
나의 팝음악 입문기를 보면 초등5학년 라디오에서 부터 시작이다
물론 그전으로 훨씬 거슬러 올라갈수 있지만 그것은 아주 드문드문 기억일 뿐이고
의식이 별로 없었다고 할수 있다 어렸을 때 여튼 팝음악 티비프로그램을 혼자 보고 앉아있었던 기억은 난다 80년대말 90년대 초반이다
그 후로 중학생이 되어 신해철의 음악도시를 통해 나의 정신세계를 수립하고 잘 나오지도 않는 케이블티비에서 하는 팝프로를 열라 목숨걸고 보기 시작했으며 녹화도 겁나 떴다 그땐 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다 좋았다
티비와 라디오를 병행하며 열라 들어대며 음악 테이프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입문은 아주 소프트한 팝이나 대중적인 가수들로 시작하고 잡지는 GMV 같이 봐줬다
그러다 뭔가 바뀌기 시작한 때는 중3겨울방학 때쯤인것 같다 sub를 접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렇다 Sub는 우리나라 팝음악 잡지에서는 어떤 초절정의 집필진과 성문영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해준 존재다 편집장이 바뀐후에도 사보긴 했지만 1년반이 안되는 그 발행호들은 진짜 미친잡지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음악적 성향도 완전 뒤집어 졌고 그때부터 음악듣기에 목숨을 걸기 시작한다
나는 시기별로 아주 빠져들었던 밴드들이 꼭 있는데 그만큼 나의 학창시절의 우울함을 음악이 채워줬다고 말 할 수 있다
중3때부터는 suede에 환장했었고 물론 멤버들의 뷰는 장관이었다. 그후로는 smith에 미쳐서 아주 가사를 버닝하기 시작했다. 모리세이의 그 급진보적인 성향과 문학과 문호들을 자기 옆에 장식해놓고 써내려가는 그 가사는 뭐 말로 설명할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oasis에 집중중이다. 그 중간중간에 많은 밴드들이 있었지만 빠져들어서 수없이 들어재끼는 수준은 이 세밴드가 가장 큰 것 같다
내가 13년만에 이오빠들을 봤다는 것은 저 오빠들을 나처럼 10년이상 기다린 팬들에게, 어떤 큰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국 첫 공연일 뿐더러 재결합에다가 밴드가 무대에 등장하자 마자 기다려온 팬들은 아마 다 울었을 것이다. 그 감회란 우리의 십대와 이십대를 거스르는 긴 시간들과 청춘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줌마들이 조용필 보고 우는 거랑 뭐 조금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우리는 그 정도로 훅 간 나이는 아니지만.
물론 그전으로 훨씬 거슬러 올라갈수 있지만 그것은 아주 드문드문 기억일 뿐이고
의식이 별로 없었다고 할수 있다 어렸을 때 여튼 팝음악 티비프로그램을 혼자 보고 앉아있었던 기억은 난다 80년대말 90년대 초반이다
그 후로 중학생이 되어 신해철의 음악도시를 통해 나의 정신세계를 수립하고 잘 나오지도 않는 케이블티비에서 하는 팝프로를 열라 목숨걸고 보기 시작했으며 녹화도 겁나 떴다 그땐 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다 좋았다
티비와 라디오를 병행하며 열라 들어대며 음악 테이프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입문은 아주 소프트한 팝이나 대중적인 가수들로 시작하고 잡지는 GMV 같이 봐줬다
그러다 뭔가 바뀌기 시작한 때는 중3겨울방학 때쯤인것 같다 sub를 접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렇다 Sub는 우리나라 팝음악 잡지에서는 어떤 초절정의 집필진과 성문영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해준 존재다 편집장이 바뀐후에도 사보긴 했지만 1년반이 안되는 그 발행호들은 진짜 미친잡지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음악적 성향도 완전 뒤집어 졌고 그때부터 음악듣기에 목숨을 걸기 시작한다
나는 시기별로 아주 빠져들었던 밴드들이 꼭 있는데 그만큼 나의 학창시절의 우울함을 음악이 채워줬다고 말 할 수 있다
중3때부터는 suede에 환장했었고 물론 멤버들의 뷰는 장관이었다. 그후로는 smith에 미쳐서 아주 가사를 버닝하기 시작했다. 모리세이의 그 급진보적인 성향과 문학과 문호들을 자기 옆에 장식해놓고 써내려가는 그 가사는 뭐 말로 설명할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oasis에 집중중이다. 그 중간중간에 많은 밴드들이 있었지만 빠져들어서 수없이 들어재끼는 수준은 이 세밴드가 가장 큰 것 같다
내가 13년만에 이오빠들을 봤다는 것은 저 오빠들을 나처럼 10년이상 기다린 팬들에게, 어떤 큰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국 첫 공연일 뿐더러 재결합에다가 밴드가 무대에 등장하자 마자 기다려온 팬들은 아마 다 울었을 것이다. 그 감회란 우리의 십대와 이십대를 거스르는 긴 시간들과 청춘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줌마들이 조용필 보고 우는 거랑 뭐 조금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우리는 그 정도로 훅 간 나이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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